흔히 착각하기 쉽지만, 이란은 아랍의 일부가 아니다. 이란인들과 비즈니스를 할 때 이란인을 아랍 사람과 동일시해서는 낭패를 보기 쉽다. 이란에서는 이슬람 이전의 아랍의 역사를 무지의 시대(Jahiliyya, 자힐리야)로 구분한다.
이란은 이슬람이 유입되기 전에도 고대 중동 역사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페르시아 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이란 바이어를 자신보다 문화 수준이 한 단계 낮다고 여기는 아랍 문화권의 일부로 취급하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이란의 국어인 페르시아어(Farsi)는 아랍어(Arabic)와 완전히 다르다. 페르시아어가 아랍어의 문자를 차용한 후 알파벳 4개를 독자적으로 추가해서 문자 체계를 구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고유 언어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문법, 표현, 발음 등은 큰 연관성이 없다. 또한 1935년에 변경된 국호 이란(Iran)은 아리아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란인은 인도-유럽어족이고 아랍인은 셈족이다. 아리아인 계통의 이란인과 비교했을 때 아랍인은 피부색이 조금 더 검고 머리카락이 곱슬이다.
이처럼 역사적·문화적·민족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지리적·종교적 이유만으로 같은 아랍권으로 묶어서 인식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큰 결례가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몇 가지 혼동하기 쉬운 개념들이 있다. 가령 아랍 혹은 아라비아라는 말은 민족적 개념에서 파생된 단어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를 통칭한다. 이들은 같은 민족이라는 정신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아랍연맹을 만들어 결속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슬람은 종교적 개념이다. 비아랍권 무슬림 국가에도 이슬람교도가 분명 존재하므로 이슬람과 아랍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중동(中東, The Middle East)이라는 단어는 지리적 개념으로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뒤로 정치·경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개념의 모호성 때문에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분쟁이 생길 소지가 있다. 즉 이란은 종교적으로 이슬람 국가이며 지리적으로 중동에 속하지만, 민족적·언어적으로 아랍이 아니다.
이란은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면서 시아파가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수니파가 중심이며 시아파는 소수에 속하므로, 오랜 이슬람 종교분파 대립의 역사에서 소수인 시아파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감춰야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이란인들은 습관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쓴다. 그러므로 이란 바이어를 만나서 가격 협상을 할 때 이란인의 모호한 발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란과 서방은 핵 문제에 관한 실무협상을 타결하고 올해 1월 20일을 기점으로 6개월간 합의안 이행에 돌입, 양측의 신뢰 구축 정도에 따라 향후 전면적인 제재 완화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이에 이란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최종 단계 합의를 위한 추가 핵협상 진행 상황 및 제재 완화 추이를 모니터링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이란은 계약 체결 시 신용장(L/C) 개설에만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현지 바이어보다 더욱 느긋한 자세로 거래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한국 기업의 이란 시장 진출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