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건축, 인문과 만나야 천년가는 보물급 나온다

김영민 기자 / 2017-03-02 19:08:28
화성(華城),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大同)의 도시
정조의 이상향 화성 오롯이 현재적, 정조와 다산 어우림의 미
화성 축성 백성 위한 탕평과 개혁 상징, 요즘 건축물 폐단지적

[화학신문 김영민 기자]"요즘 대한민국 건축물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개발업자와 시공업자간의 이익추구에만 몰입할 뿐, 100년은 커녕, 1000년을 지향하는 건축물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유럽 등 선진국 건축물이 지금에 와서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인문학과 결합된 자연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이죠,"


우리 건축사의 한 획을 그는 원로 건축가는 쓴 소리다.

세종의 위대한 총화(總和)에 닿아 있는 개혁군주 정조의 대동(大同)과 문무쌍전(文武雙全)의 이상향 화성(華城)의 경륜은 오롯이 현재적이다. 또한 멋진 군주와 멋진 충신 다산의 합일은 꿈같이 아름답다.

고은 (시인, 정조특별시 명예시장)선생에게 책의 추천사를 부탁드렸더니, 하룻밤새 다 읽으시고 바로 추천사를 써 주셨다. 그만큼 알차고 재밌다는 얘기다.

나라도 엉망이고 출판계도 어수선하지만, 출판인은 책을 펴낼 때가 제일 행복하다. 

수원 화성과 정조 임금 연구자로는 당대 최고인 한신대 김준혁 교수의 역작을 출간했다. 제목은 '화성,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 특히 작년 여름에 저자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최초로 발견한 '정리의궤' 화성성역도 채색그림을 올컬러로 실었다. 국내 최초다. 한마디로 돈 좀 들였다.

올해는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 하지만 정작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와 '목민심서'를 저술한 다산 정작용의 풍운지회와 위민사상이 담긴 화성에 대해서는 의외로 잘 모른다.

곧 꽃피는 봄날이다. 먼저 책부터 읽고 연인 또는 가족과 함께 수원 화성을 찾아보길 권한다. 그러면 '백성을 위한 도시' 화성의 건축물과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21세기에 와서 찬찬히 들려다보니 정조의 이상향 화성(華城)은 오롯이 현재적이다. 또한 정조와 다산의 어우러짐은 꿈같이 아름답다.

 

화성은 1997년 12월 6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올해는 세계문화유산 지정 20주년이 되는 해로, 수원시와 경기도는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책은 화성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가 세계문화유산 지정 2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출간하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위민정신이 담겨 있는 화성! 그렇다면 화성은 어떤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것일까?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고 조사한 국제기념물유적협회는 "화성은 18세기 군사건축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럽과 동아시아의 성곽 축조 기술의 특징을 통합했다는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당시 유네스코 심사위원으로 화성을 방문한 스리랑카의 실바 교수는 "화성의 역사는 불과 200년밖에 안 됐지만 성곽의 건축물이 동일한 것 하나 없이 각기 다른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현재 국제기념물유적협회 한국위원회 위원장이자 유네스코 위원인 동국대 이혜은 교수도 2010년 11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열린 유네스코포럼에서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화성이 아름답고 독창적일 뿐 아니라 화성 축성 과정에서 보여준 정조대왕의 위민정신과 과학정신을 담은 창조성 때문"이라고 했다.

'의궤'기록에 의해 철저하게 복원된 화성의 가치!

그런데 화성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과정에 또 다른 중요한 사연이 있다.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6개월 전인 1997년 6월, 프랑스 파리의 이사회와 카페의 작은 모임으로 돌아가 보자.

그 모임의 참석자들은 유네스코 이사회 집행위원들이었으며, 당시 그들은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유인즉,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기는 하나 6.25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것을 현대에 와서 복원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때문에 그들은 화성의 세계유산 등재는 부정적이었다.

외무부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당시 수원시장이었던 故 심재덕 시장은 다음날 아침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유네스코 이사회에 공식 요청을 해 유네스코 이사회 컨벤션센터 옆의 작은 카페에서 집행위원들과 만났다. 그 만남이 있은 다음날 유네스코 이사회는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통과시켰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그들의 마음을 되돌린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때문. 심재덕 수원시장은 영인본 '화성성역의궤'를 들고 그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집행위원들에게 우리 민족의 자랑인 '화성'의 모든 기록을 담고 있는 '화성성역의궤'를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화성이 축성 당시의 기록에 의해 철저하게 복원된 것임을 강조했다. 집행위원들은 '화성성역의궤'라는 기록물을 보고 그 기록의 철저함과 세밀함에 감탄했다고 한다.

이번에 저자는 최초로 발견한 화성 성역도 채색본 수록됐다. 2016년 6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BNF)에서 왕실 도화서 화원들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채색으로 화성 시설물을 그린 정리의궤 성역도(城役圖) 제39권이 발견된 것.

정조는 화성이 완공된 후 축성의 전반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를 간행했다. 화성성역의궤 수권(首卷)에 훈련도감 소속의 화원이 그린 '화성전도'가 실려져 있다. 하지만 화성성역의궤 수권에 그려진 화성전도는 채색도가 아닌 목판본으로 제작된 것이다.

화성 축성을 기록한 책으로는 '정리의궤'도 있다. 이는 1797년~1800년 사이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옮긴 과정을 담은 '현륭원원소도감의궤', '화성성역의궤'에서 주요 내용을 발췌해 한글로 옮긴 것으로, 어머니를 위해 언해본으로 편찬한 것이다. 현재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한글의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재 프랑스 파리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1887년 한국의 첫 프랑스 외교관으로 부임했던 빅또르 꼴렝 드 플랑시가 프랑스로 가져갔다. 그는 귀국 후 '정리의궤'12책은 파리 동양어학교에 기증하고, 채색그림들이 있는 제39권인 성역도는 경매 처분했다.

바로 채색본 성역도를 찾아낸 주인공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김준혁 교수이다. 김준혁 교수는 2016년 6월,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인 안민석 의원 등과 함께 파리로 가서 경매 당시 구입자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한 이 책의 존재를 확인하고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채색본 정리의궤의 발견은 정조대왕의 개혁 정신과 민본주의의 뜻이 살아있는 화성의 완벽한 복원과 정비를 위한 소중한 자료이기에 당시 방송과 신문 등이 다투어 보도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멋진 군주 정조와 멋진 신하 다산의 풍운지회!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무엇보다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성곽, 그리고 백성을 위한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성의 의의는 그뿐만이 아니다. 화성에는 정조의 인본주의와 조선의 개혁을 추진하고자 한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 또 그런 화성을 설계한 이가 다산 정약용이다. 일찍이 정인보는 그 점에 주목해 "정조는 다산이 있었기에 정조일 수 있었고, 다산은 정조가 있었기에 다산일 수 있었다."고 했다.

김준혁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정조와 다산의 꿈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인간 존중의 정신이 어떻게 화성에서 구현되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화성과 정조에 관한 전문가로 일가를 이룬 김준혁 교수는 슬기로운 임금 정조와 어진 신하 다산이 꿈꾼 백성을 위한 '대동(大同)의 도시 화성'을 주제로 삼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밤을 새워가며 새로운 정책과 대안을 마련했던 정조와 다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조선의 그 어떤 국왕보다도 어려운 정국을 딛고 국왕이 된 정조는 백성들이 누구나 부유해지고(戶戶富實), 화목하고 즐겁기를(人人和樂)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 그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는 바로 '낙국낙토'(樂國樂土)였다.

화성 축성은 백성을 위한 탕평과 개혁의 상징!

이를 완벽하게 성공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정조 자신의 정치적 배후도시 화성(華城)이었다. 그래서 정조는 화성을 축성하고 해마다 화성으로 행차하면서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즉위 초 시해당할 위기에 처할 정도로 미약한 왕권에서 출발한 정조는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혁군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정조가 철저히 백성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개혁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비록 정권이 미약하게 출발해도 백성을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반드시 후세의 역사가에게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조와 다산 그리고 화성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시대정신이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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